【 신토불이 우리문학 193 】
토혈
최서해
책소개
〈토혈(吐血)〉은 192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최서해의 단편소설이다.
이월의 북국에는 아직 봄빛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눈이 오려는지 회색 구름은 온 하늘에 그득하였다. 워질령을 스쳐오는 바람은 몹시 차다. 벌써 날이 기울었다.
나는 가까스로 가지고 온 나뭇짐을 진 채로 마루 앞에 펄썩 주저앉았다. 뼈가 저리도록 찬 일기건마는 이마에서 구슬땀이 흐르고 전신은 후끈후끈하다. ─ 〈토혈〉 본문 중에서
“얘 의원을 보이고 약이나 좀 써 보았으면 원이나 없겠구나! 어디 좀 가서 사정이나 하여 보아라.”
어머니는 울음 절반으로 말씀하신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일어섰다.
날은 벌써 저물었다. 이집 저집에서 나는 석연이 솟는다. 바람은 점점 차진다.
나는 의원을 불러 왔다. 뱃심 좋은 의원을 제발 사정하여 불러 왔다. ─ 〈토혈〉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최서해(崔曙海, 1901~1932)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 겸 소설가이다.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며 서해(曙海)는 아호이다.
최서해는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리에서 한의사를 겸업하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은 빈궁했지만, 《청춘(靑春)》·《학지광(學之光)》 등의 문학 잡지를 읽으면서 스스로 문학에 눈을 떠, 15세 때 《학지광》에 투고한 산문시가 게재되기도 했다.
1924년 1월 《동아일보》에 〈토혈(吐血)〉을 발표하고, 작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노모와 아내, 딸을 두고 홀로 상경하였다. 같은 해 10월 《조선문단》에 〈고국(故國)〉을 발표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5년 조선문단사(朝鮮文壇社)에 입사한 후, 단편 〈십삼원(拾參圓)〉과 작가적 명성을 얻게 해준 〈탈출기(脫出記)〉를 발표했다. 계속해서 〈살려는 사람들〉, 〈박돌(朴乭)의 죽음〉, 〈기아와 살육〉, 〈큰물 진 뒤〉와 같은 문제작을 발표하고, 카프(KAPF)에도 가입했다.
1926년 4월 8일 카프 맹원이자 시인 조운의 누이 조분려와 4번째 결혼을 하고 〈폭군〉, 〈설날밤〉, 〈백금〉, 〈소살〉, 〈해돋이〉, 〈그믐밤〉, 〈금붕어〉, 〈누가 망하나〉, 〈무서운 인상〉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27년 《조선문단》에 〈홍염(紅焰)〉, 《동광》에 〈전아사(錢迓辭)〉 등을 발표하고 1928년에는 《신민》에 〈갈등(葛藤)〉을 발표했다.
1929년 카프를 탈퇴하고 중외일보에서 매일신보 학예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행복〉, 〈전기〉, 〈무명초〉, 〈누이동생을 따라서〉 등을 발표했다.
1932년 위문협착증으로 수술을 받다가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최초의 문인장으로,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대표작으로는 〈토혈〉, 〈고국〉, 〈십삼원〉, 〈탈출기〉, 〈살려는 사람들〉, 〈기아와 살육〉, 〈큰물 진 뒤〉, 〈홍염〉, 〈갈등〉, 〈호외시대(號外時代)〉 등이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가 직접 체험한 극단적인 빈궁의 참상을 폭로하고 고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