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의 농성

【 신토불이 우리문학 138 】

원한의 농성

차상찬

 

책소개

〈원한의 농성〉은 《한국야담사화전집》 차상찬 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되놈이 지금 경기 땅을 들어 섰다지?”
“경기 땅이 무엇이야 되놈의 군사가 시방 창의문 밖에 진을 치고 있어, 남녀 노유를 물론하고 보이는 대로 막 묶어 간다네.”
이렇게 온 성중 배성들은 모두 쑥덕거리었다.
요 근자 며칠을 두고 무학재 봉수대에는 봉홧불이 끊일 새 없고 서도에서 달려오는 역마의 말방울 소리는 귀를 요란스럽게 하였다. ─ 〈원한의 농성〉 본문 중에서
강화는 옛적 고려 시대부터 피란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전국이 다 적군에게 짓밟히더라도 오직 여기만은 안전지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 고종이 거기에 피란하여 몽고의 화를 피하였고, 바루 얼마 전에도 정묘노란에 피란한 일도 있었다.
어느 때든지 북방 민족이 침입할 때에는 아무 데보다도 으례히 강화로 가는 것이 준례가 된 것이다. ─ 〈원한의 농성〉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차상찬(車相瓚, 1887~1946)
본관은 연안, 호는 청오(靑吾), 도호는 노암(蘆菴)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가, 수필가, 언론인이다.
1887년 2월 12일 강원도 춘천에서 5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06년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8년 학생들을 모아 관동학회를 조직하였다.
1910년 3월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회에 참여하여 개벽사를 창립하는데 앞장섰다.
1920년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야회 이돈화 등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1921년 5월 1일 이돈화, 박달성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창립, 그 1주기가 되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선포했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이후에도 별건곤, 신여성, 농민, 학생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1938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희빈》을 연재하는 중에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46년 3월 24일 사망하여, 춘천시 송암동에 안장되었다.
2010년 11월 1일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이 있으며 주로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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