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200 】
노래를 잊은 사람
이무영
책소개
〈노래를 잊은 사람〉은 1934년 11월, 12월 《중앙》에 수록된 이무영의 단편소설이다.
멀리 찬바람을 타고 온 노랫소리는 팔 년 만에 고향에서 맺은 나의 첫 꿈을 깨어버렸다.
부엉이 소리 사이사이에 토막토막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는 것도 괴이치는 않았지마는 팔 년간 그린 고향에서의 첫 꿈이니만큼 아끼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십 년 가까이나 키 잃은 범선처럼 떠돌아다닌 나는 이 고향의 첫날 밤에 무엇인지는 모르면서도 기대하는 것이 많았었다.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손수 보아준 자리 속에 누워서 나는 그동안 주리었던 어머니의 애정을 마음껏 즐기었었다. ─ 〈노래를 잊은 사람〉 본문 중에서
“이 죽일 놈들아! 집도 없고 말도 못 하는 병신을 실컷 부려먹고 얼어 죽이느냐! 그러고도 장사도 안 지내줘! 이 죽일 놈들아!”
그는 팔을 걷고 이를 북북 갈았다. 그러고는 외마디 소리를 ‘억!’ 치면서 도 서방한테 달려들었다.
그 순간 그는 정신에 변화를 가져왔다. 순식간에 거기 모인 칠팔 명을 때려눕혔다. ─ 〈노래를 잊은 사람〉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이무영(李無影, 1908~1960)
본명은 이갑용(李甲龍), 아명은 이용구(李龍九)이며, 무영(無影)은 그의 필명이다.
1908년 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나, 1913년 지금의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로 이주하여, 1920년 용명(龍明)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5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조(成城)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결국 중퇴하고 귀국했다.
1926년 소설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31년에는 극예술연구회에, 1933년 순문학을 추구하는 구인회에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1932년 《동아일보》에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연재하면서부터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939년 〈제1과 제1장〉, 1940년에 〈흙의 노예〉를 발표하면서, 이 시기부터 한국 농민 문학, 농촌 소설의 선구자로 불렸다.
1943년에는 친일 소설 〈토룡〉과 〈향가〉 등을 발표했다.
해방 후, 6.25 전쟁 때에는 염상섭, 윤백남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의 정훈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1960년 4월 21일 뇌일혈로 숨졌다.
대표작으로는 단편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등이 있고,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 〈폐허〉, 〈먼동이 틀 때〉, 〈농민〉 등이 있다. 희곡으로는 〈팔각정 있는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