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45 】
남의 마누라
김동인
책소개
〈남의 마누라〉는 1936년 3월 《야담(野談)》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보름달, 가을날 밝은 달이 고요히 비치는 가운데를 갈짓자(之) 걸음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혼자서 중얼중얼하며 지나가는 취객이 있었다.
“마누라, 허허허허 좋구 말구…… 아이구 이뻐. 이놈 네 달아, 내 말을 듣거라. 네 아무리 이쁘다기로서니 우리 마누라 배꼽을 당할 게냐? 우─ 취해.”
동쪽 담장에 부딪쳐서 물러나서는 서쪽 담장에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는 쓰러지며 넘어지며, 달 밝은 길을 가는 젊은이, 동악 이안눌(東岳 李安訥)이었다. ─ 〈남의 마누라〉 본문 중에서
“도리로 말씀하자면 일이 별하게 돼서 이렇게 되었지, 앙천부지에 부끄럴 것은 없지만,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알아주겠습니까? 음남 음녀로 여길 테니까 되려 도망가서 저는 소실로 숨어 있고, 서방님은 학업을 닦으셔서 장차 영달하시는 날에 부모께 자초지종을 여쭙고 용서를 빌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남의 마누라〉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이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이다.
1900년 10월 2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양의 대부호이자 개신교 장로였던 김대윤(金大閏)이다.
1919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주요한을 발행인으로 한국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시어딤 창작집》을 자비로 발간했다.
1924년 8월 동인지 《영대》를 창간하여 1925년 1월까지 발간했다.
1930년 9월부터 1931년 11월까지 《동아일보》에 첫 번째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연재했다.
1932년 7월 문인친목단체인 조선문필가협회 발기인, 위원, 사업부 책임자를 맡았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친일 성향으로 돌아서 창씨개명을 하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선전·선동하는 글들을 많이 남겼다.
1949년 7월에 중풍으로 반신 불수가 된 후, 1951년 1월 5일 서울 자택에서 52세의 나이로 홀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배따라기〉, 〈감자〉, 〈명문〉, 〈무지개〉, 〈광화사〉, 〈붉은 산〉, 〈운현궁의 봄〉, 〈광염소나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