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의 혼

【 신토불이 우리문학 125 】

열녀의 혼

차상찬

 

책소개

〈열녀의 혼〉은 《한국야담사화전집》 차상찬 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 년 전 일이었다. 강원도의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유명한 총석정이 있는 통천군에는 이시택이라고 하는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직업이 명색 농부이지마는 자기 집에 토지가 없고 남의 토지로 약간의 소작농을 하는 까닭에 피땀을 흘리고 손톱이 빠지도록 힘써 농사를 지어도 추수 때가 되어 지주의 소작료를 주고 비싼 구실을 치르고 나면 겨울 먹을 양식이 없으므로 농한기가 되면 부업으로 소금 장사를 하여 산촌으로 돌아다니며 소금과 곡식을 바꾸어다가 근근이 생활을 하였다. ─ 〈열녀의 혼〉 본문 중에서
“여보시오. 우리 집 주인이 아까 점심때 저 산 너머 동네잔치 구경을 갔는데, 그 집에 부조를 하느라고 이 자루에다 쌀 한 말을 가지고 가더니 돌아오는 길에 영 밑에서 아마 호랑이에게 해를 입은 모양입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목을 놓아 울기를 시작하였다.
소금 장수는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그저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열녀의 혼〉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차상찬(車相瓚, 1887~1946)
본관은 연안, 호는 청오(靑吾), 도호는 노암(蘆菴)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가, 수필가, 언론인이다.
1887년 2월 12일 강원도 춘천에서 5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06년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8년 학생들을 모아 관동학회를 조직하였다.
1910년 3월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회에 참여하여 개벽사를 창립하는데 앞장섰다.
1920년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야회 이돈화 등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1921년 5월 1일 이돈화, 박달성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창립, 그 1주기가 되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선포했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이후에도 별건곤, 신여성, 농민, 학생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1938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희빈》을 연재하는 중에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46년 3월 24일 사망하여, 춘천시 송암동에 안장되었다.
2010년 11월 1일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이 있으며 주로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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