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31 】
어즈러움(어지러움)
김동인
책소개
〈어즈러움〉은 1923년 발표한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많지는 못하였으나 내 일생에는 풍족하던 재산은 몇 해 동안의 끝 모르는 방랑에 볼 나위 없이 줄어지고 말았다.
큰 땅은 팔리어 적은 땅이 되고, 적은 땅은 팔리어 빚 때문에 나가고, 이리하여 마침내 나에게는 가장 신성하던 저택까지 인제는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평양 성내에 주택지로는 한 군데밖에 없는 곳에 사백여 평을 점령하고 있던 그 커다란 저택. ─ 〈어즈러움〉 본문 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준 금전이, 형에게는 늘고 아우에게서는 그냥 있고, 내게서는 없어졌으되, 없이한 나는 가장 금전을 향락한 사람이다.
공자는 청빈을 즐기라고,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되 배금종인 나는 탁빈도 즐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돈을 남용한 탓으로 과대망상광이 될 수만 있거든, 나는 이를 감수할 뿐만 아니라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겠다. ─ 〈어즈러움〉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이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이다.
1900년 10월 2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양의 대부호이자 개신교 장로였던 김대윤(金大閏)이다.
1919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주요한을 발행인으로 한국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시어딤 창작집》을 자비로 발간했다.
1924년 8월 동인지 《영대》를 창간하여 1925년 1월까지 발간했다.
1930년 9월부터 1931년 11월까지 《동아일보》에 첫 번째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연재했다.
1932년 7월 문인친목단체인 조선문필가협회 발기인, 위원, 사업부 책임자를 맡았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친일 성향으로 돌아서 창씨개명을 하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선전·선동하는 글들을 많이 남겼다.
1949년 7월에 중풍으로 반신 불수가 된 후, 1951년 1월 5일 서울 자택에서 52세의 나이로 홀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배따라기〉, 〈감자〉, 〈명문〉, 〈무지개〉, 〈광화사〉, 〈붉은 산〉, 〈운현궁의 봄〉, 〈광염소나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