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84 】
사기사
김동인
책소개
〈사기사〉는 1932년 10월 《신생활》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서울로 이사를 와서 행촌동에 자그마한 집을 하나 마련한 이삼 일 뒤의 일이다.
그날 나는 딸 옥환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잠시 문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동안 집은 아내 혼자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매 집 대문간에 웬 자그마한 새 쓰레기통이 하나 놓여있었다. ─ 〈사기사〉 본문 중에서
이 깜빡수에 나는 속았다. 그래서 빨리 잡아오라고 그자를 놓아주었다.
놓아준 지 1분 내외에 속은 것을 안 나는 그자를 찾으려고 길로 뛰쳐나가 보았다.
그러나 그자의 행방은 벌써 모르게 되었다.
그 근처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스몄는지 그자의 거처는 보이지 않았다. ─ 〈사기사〉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이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이다.
1900년 10월 2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양의 대부호이자 개신교 장로였던 김대윤(金大閏)이다.
1919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주요한을 발행인으로 한국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시어딤 창작집》을 자비로 발간했다.
1924년 8월 동인지 《영대》를 창간하여 1925년 1월까지 발간했다.
1930년 9월부터 1931년 11월까지 《동아일보》에 첫 번째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연재했다.
1932년 7월 문인친목단체인 조선문필가협회 발기인, 위원, 사업부 책임자를 맡았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친일 성향으로 돌아서 창씨개명을 하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선전·선동하는 글들을 많이 남겼다.
1949년 7월에 중풍으로 반신 불수가 된 후, 1951년 1월 5일 서울 자택에서 52세의 나이로 홀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배따라기〉, 〈감자〉, 〈명문〉, 〈무지개〉, 〈광화사〉, 〈붉은 산〉, 〈운현궁의 봄〉, 〈광염소나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