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90 】
나의 시베리아 방랑기
백신애
책소개
〈나의 시베리아 방랑기〉는 1939년 4월 23일~30일 《국민신보》에 연재된 백신애의 단편소설이다.
정말로 나는 이상한 여자애였다. 이 이상한 여자애에게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쌓여 열아홉 살의 봄을, 아니 열아홉 살의 가을을 맞이했다.
드디어 찬스가 왔다. 감상의 오랜 꿈은 빨간 열매로 익어 작은 손가방 하나를 든 소녀 여행자가 된 것이다.
누가 알았을까! 이 소녀가 바로 행복과 애정으로 가득한, 따뜻한 가정을 빠져나온 마음 약한 잠자리란 것을.
게다가 난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얌전한 모습을 한 채 허용될 수 없는 모험에 가슴을 콩닥거리며 홀짝홀짝 울며 길러온 꿈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 〈나의 시베리아 방랑기〉 본문 중에서
나는 묵묵히 그저 걸었다. 넓고 넓은 시베리아의……라는 노랫말 그대로인 넓고 넓은 설원을 지나 황량한 언덕과 산을 걸어서 넘었다.
말을 탄 두 병사는 목소리를 맞춰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황량한 풍경과 너무나 잘 어울려 나도 모르게 뚝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닦지 않아도 거센 찬바람이 가지고 가버렸다. 삼사십 리나 걸었으리라 생각될 무렵 나는 한 언덕 아래 쓰러지고 말았다. ─ 〈나의 시베리아 방랑기〉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백신애(白信愛, 1908~1939)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여성 소설가이다.
아명은 무잠(武潛), 호적명은 백무동(白戊東)이며,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1908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1924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 후 영천공립보통학교와 자인공립보통학교(玆仁公立普通學校)에 교원으로 연달아 근무하였다.
1926년 상경하여 조선여성동우회와 경성여성청년동맹 상임위원으로 활동한다.
1929년 1월 1일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1932년 부모의 결혼 강요에 못 이겨 은행원 이근채(李根采)와 약혼하고, 이듬해 봄 대구공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34년 《신여성》에 〈꺼래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복선이〉, 〈정조원(貞操怨)〉, 〈채색교(彩色橋)〉, 〈적빈(赤貧)〉, 〈낙오(落伍)〉 등을 발표했다.
1935년 〈멀리 간 동무〉, 〈상금 삼원야〉, 〈의혹의 흑모〉, 〈악부자〉, 〈정현수(鄭賢洙)〉를 발표했다. 그해 12월 아버지가 일본 규슈제국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
1936년 단편 〈학사〉, 〈식인(食因)〉, 〈어느 전원의 풍경〉을 발표하였는데, 〈식인〉은 나중에 〈호도(糊塗)〉로 개작했다.
1937년 꽁트 〈가지말게〉를 발표하고, 1938년 〈광인수기(狂人手記)〉, 〈소독부(小毒婦)〉, 〈일여인〉을 발표했다.
1939년 단편 〈혼명(昏冥)에서〉를 발표하고, 5월 말경 위장병으로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여 6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11월 유작인 중편 〈아름다운 노을〉이 《여성지》에 3회 분재(分載)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전기 외에 〈낙오〉, 〈정현수〉, 〈정조원〉, 〈호도〉, 〈광인수기〉, 〈소독부〉, 〈채색교〉, 〈혼명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