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073 】
나의 어머니
백신애
책소개
〈나의 어머니〉는 1929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백신애의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신춘문예 사상 첫 여성당선자 작품이다.
딸자식은 의례히 시집갈 때까지 친정에서 먹여주는 것이 예부터 해오던 습관이라면 나도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머니의 한낱 딸이니 놀고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언마는 오빠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보통학교 교원으로 있던 내가 여자 청년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일조에 권고사직(勸告辭職)을 당하고 나서는 그대로 할 일이 없으니 부득이 놀 수밖에 없이 되었다. ─ 〈나의 어머니〉 본문 중에서
내가 이 식혜를 먹지 않으면 어머니 속이 얼마나 아프시랴!
오빠 생각에 넘어가지 않는 음식이라 또 내가 먹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많이 먹는 척하시는 가엾은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 〈나의 어머니〉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백신애(白信愛, 1908~1939)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여성 소설가이다.
아명은 무잠(武潛), 호적명은 백무동(白戊東)이며,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1908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1924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 후 영천공립보통학교와 자인공립보통학교(玆仁公立普通學校)에 교원으로 연달아 근무하였다.
1926년 상경하여 조선여성동우회와 경성여성청년동맹 상임위원으로 활동한다.
1929년 1월 1일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1932년 부모의 결혼 강요에 못 이겨 은행원 이근채(李根采)와 약혼하고, 이듬해 봄 대구공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34년 《신여성》에 〈꺼래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복선이〉, 〈정조원(貞操怨)〉, 〈채색교(彩色橋)〉, 〈적빈(赤貧)〉, 〈낙오(落伍)〉 등을 발표했다.
1935년 〈멀리 간 동무〉, 〈상금 삼원야〉, 〈의혹의 흑모〉, 〈악부자〉, 〈정현수(鄭賢洙)〉를 발표했다. 그해 12월 아버지가 일본 규슈제국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
1936년 단편 〈학사〉, 〈식인(食因)〉, 〈어느 전원의 풍경〉을 발표하였는데, 〈식인〉은 나중에 〈호도(糊塗)〉로 개작했다.
1937년 꽁트 〈가지말게〉를 발표하고, 1938년 〈광인수기(狂人手記)〉, 〈소독부(小毒婦)〉, 〈일여인〉을 발표했다.
1939년 단편 〈혼명(昏冥)에서〉를 발표하고, 5월 말경 위장병으로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여 6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11월 유작인 중편 〈아름다운 노을〉이 《여성지》에 3회 분재(分載)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전기 외에 〈낙오〉, 〈정현수〉, 〈정조원〉, 〈호도〉, 〈광인수기〉, 〈소독부〉, 〈채색교〉, 〈혼명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