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 신토불이 우리문학 179 】

혼인

이광수

 

책소개

〈혼인〉은 1925년 2월 집필한 이광수의 단편소설이다.
굴깨라는 동네 이름은 굴이 난다는 데서 온 것이외다.
뒤에 큰 산을 진 서해 바닷가에 스무 남은 집이나 서향하고 앉은 것이 굴깨라는 동네이니, 동네 주민은 반은 농사하는 사람이요, 반은 해산(고기잡이)하는 사람이외다.
한 동네에 살건마는 농사하는 사람은 농부의 기풍이 있어서 질박하고, 고기잡이하고 배에 다니는 사람은 뱃사람의 기풍이 있어서 술도 먹고 노름도 합니다. ─ 〈혼인〉 본문 중에서
“세째야, 내가 죽일 놈이다. 나는 너 장가갈 적에 무얼 좀 잘해 줄 양으로 마침 비도 오고 하기에 노름을 시작했구나. 처음에는 돈백 냥이나 따기에, 그만 미쳐서 떨어먹고 말았다. 바다에 빠져 죽으려다가 돌아왔다. 세째야, 내가 죽일 놈이다.”
하고 흑흑 느껴 울었고, 세째도 아무 말도 없이 울었습니다.
그 이튿날 형은 세째를 대할 면목이 없으니, 어디를 가서든지 돈을 벌어 가지고야 돌아온다고 집을 떠나서 운산 금광으로 갔습니다. ─ 〈혼인〉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이광수(李光洙, 1892~1950)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이다.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안원대군의 후손인 이종원(李鍾元)과 어머니 충주 김씨(忠州金氏)의 4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1살 때 전염병으로 부모님과 가족들을 잃고 천도교에 입교, 1905년 일진회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유학갔다.
1908년 홍명희·문일평·안재홍 등과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해 《소년》을 발행, 이듬해 소설 〈노예〉, 〈사랑인가〉, 〈호(虎)〉를 발표했다.
1910년 《대한흥학보》에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고 계몽단체 광문회(光文會)의 일원이 되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독립신문》과 《신한청년》 주필로 활동했다.
1922년 5월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도덕적 타락’이 한민족의 쇠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동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로 전향, 1939년 친일단체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전선병사 위문대·위문문 보내기를 주도했다.
1940년부터 해방 전까지 《매일신보》에 황민화운동, 창씨개명 정책,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징병제 실시 등을 지지하는 글을 게재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기소됐으나 석방되고, 1950년 6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 만포에서 병사했다.
대표작으로 소설 〈무정〉, 〈사랑인가〉, 〈소년의 비애〉, 〈무명〉, 〈마의태자〉, 〈흙〉, 〈원효대사〉, 〈유정〉, 〈애욕의 피안〉, 〈할멈〉, 〈가실(嘉實)〉 등이 있으며, 전기 〈이순신〉, 〈안창호〉와 자서전 〈나의 고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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