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76 】
일여인
백신애
책소개
〈일여인〉은 1938년 9월 《사해공론》에 발표된 백신애의 단편소설이다.
“이 자식아, 양치를 쳐야지, 그놈의 개새끼 같은 놈들의 자식처럼 양치도 않고 학교에 다닐 테냐?”
마님의 호령에 도련님은 입을 벌리고 얼굴을 찡그린 채 끙끙 앓기만 한다.
양치질이 가까스로 끝나고 세안 크림을 찍어 도련님 얼굴과 목덜미를 냅다 문지르기 시작하자 도련님은 작은 망아지처럼 뒷발을 치켜들며, 그만 씻으라고 악을 쓴다. ─ 〈일여인〉 본문 중에서
예전 시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천 석이나 하다가 그 시아버지가 죽고 말자 일조에 폭삭 망해 버리고, 겨우 백 석 남짓 추수하는 것을 그 남편이 밤낮 먹고 놀기만 하니 고생함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남에게 업신여김 받기 싫어 쓸데없는 유모, 침모, 식모, 상노 아이를 부리게 되니, 온 식구 셋(남편과 마님과 도련님)에 부리는 사람이 넷이다. ─ 〈일여인〉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백신애(白信愛, 1908~1939)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여성 소설가이다.
아명은 무잠(武潛), 호적명은 백무동(白戊東)이며,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1908년 경북 영천 출생으로, 1924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 후 영천공립보통학교와 자인공립보통학교(玆仁公立普通學校)에 교원으로 연달아 근무하였다.
1926년 상경하여 조선여성동우회와 경성여성청년동맹 상임위원으로 활동한다.
1929년 1월 1일 박계화(朴季華)란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1932년 부모의 결혼 강요에 못 이겨 은행원 이근채(李根采)와 약혼하고, 이듬해 봄 대구공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34년 《신여성》에 〈꺼래이〉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복선이〉, 〈정조원(貞操怨)〉, 〈채색교(彩色橋)〉, 〈적빈(赤貧)〉, 〈낙오(落伍)〉 등을 발표했다.
1935년 〈멀리 간 동무〉, 〈상금 삼원야〉, 〈의혹의 흑모〉, 〈악부자〉, 〈정현수(鄭賢洙)〉를 발표했다. 그해 12월 아버지가 일본 규슈제국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
1936년 단편 〈학사〉, 〈식인(食因)〉, 〈어느 전원의 풍경〉을 발표하였는데, 〈식인〉은 나중에 〈호도(糊塗)〉로 개작했다.
1937년 꽁트 〈가지말게〉를 발표하고, 1938년 〈광인수기(狂人手記)〉, 〈소독부(小毒婦)〉, 〈일여인〉을 발표했다.
1939년 단편 〈혼명(昏冥)에서〉를 발표하고, 5월 말경 위장병으로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여 6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11월 유작인 중편 〈아름다운 노을〉이 《여성지》에 3회 분재(分載)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전기 외에 〈낙오〉, 〈정현수〉, 〈정조원〉, 〈호도〉, 〈광인수기〉, 〈소독부〉, 〈채색교〉, 〈혼명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