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상의 삼미인

【 신토불이 우리문학 167 】

압록강상의 삼미인

차상찬

 

책소개

〈압록강상의 삼미인〉은 《한국야담사화전집》 차상찬 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여 년 전이다.
부여 나라에는 해부루란 임금이 있어 정치를 잘하여 국내가 태평하게 되니 아무 걱정할 일이 없었으나 다만 나이 많이 먹도록 왕자가 없는 까닭에 그것으로 항상 걱정을 하여 천하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아들 낳기를 빌었었다. ─ 〈압록강상의 삼미인〉 본문 중에서
왕은 그것을 어찌하지도 못하고 최후에 다시 그 어머니에게로 보냈더니 얼마 아니 하여 그 알이 탁 터지고 그 알 속으로부터 일개 남아가 뛰어나오는데 골표가 비범하고 음성이 웅대하였다.
때는 한선제 신작사년 계해사월이었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자기 손으로 능히 활을 만들어서 백발백중의 활을 쏘니 그때 그곳이 속말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함으로 이름을 주몽이라 지었다. ─ 〈압록강상의 삼미인〉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차상찬(車相瓚, 1887~1946)
본관은 연안, 호는 청오(靑吾), 도호는 노암(蘆菴)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가, 수필가, 언론인이다.
1887년 2월 12일 강원도 춘천에서 5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06년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8년 학생들을 모아 관동학회를 조직하였다.
1910년 3월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회에 참여하여 개벽사를 창립하는데 앞장섰다.
1920년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야회 이돈화 등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1921년 5월 1일 이돈화, 박달성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창립, 그 1주기가 되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선포했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이후에도 별건곤, 신여성, 농민, 학생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1938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희빈》을 연재하는 중에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46년 3월 24일 사망하여, 춘천시 송암동에 안장되었다.
2010년 11월 1일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이 있으며 주로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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