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54 】
김역관과 운남왕녀
차상찬
책소개
〈김역관과 운남왕녀〉는 《한국야담사화전집》 차상찬 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진중에는 우리나라 사람 통역에 김모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나이 아직 이십 세 내외에 불과하였으나 인물이 천하 미남자로 잘 생기고, 말재주가 능하여 얼마 배우지 않았건만 명나라 말을 아주 유창하게 잘하고, 성질이 또한 기민하고 영리하니, 이여송이 특별히 사랑하고 귀여워하여 밤과 낮으로 잠시라도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 〈김역관과 운남왕녀〉 본문 중에서
“당신이 이렇게 된 것도 천하의 이상한 인연이요. 또 이러한 천하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난 것도 또한 세상에 아주 드문 일이니 본국으로 데리고 갈 수 없으시다면 아주 이곳에다 집을 한 채 정해놓고 일년일차 귀국의 사신이 올 때마다 당신이 역관으로 오셔서 마치 견우직녀가 칠월칠석 한 번씩 만나는 것같이 서로 만난다면 더욱 좋지 않습니까.” ─ 〈김역관과 운남왕녀〉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차상찬(車相瓚, 1887~1946)
본관은 연안, 호는 청오(靑吾), 도호는 노암(蘆菴)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가, 수필가, 언론인이다.
1887년 2월 12일 강원도 춘천에서 5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06년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8년 학생들을 모아 관동학회를 조직하였다.
1910년 3월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회에 참여하여 개벽사를 창립하는데 앞장섰다.
1920년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야회 이돈화 등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1921년 5월 1일 이돈화, 박달성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창립, 그 1주기가 되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선포했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이후에도 별건곤, 신여성, 농민, 학생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1938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희빈》을 연재하는 중에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46년 3월 24일 사망하여, 춘천시 송암동에 안장되었다.
2010년 11월 1일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이 있으며 주로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