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 신토불이 우리문학 153 】

옥수수

이광수

 

책소개

〈옥수수〉는 1940년 3월 《삼천리(三千里)》에 발표된 이광수의 단편소설이다.
원산 시가와 송도원 해수욕장 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산기슭이 뾰족이 나와 있는 그곳에 안씨라 하는 한 기인이 살고 있다.
안씨와 나와는 수십 년 전부터 알아 오는 사이였으나 친밀한 교제가 있는 사이는 아니었었다.
올여름 내가 송도원 해변가에서 뜻 아니한 안씨와 만나게 되어서 내 어린 자식들과 한 가지 안씨 댁으로 만찬에 불리게 되었다. ─ 〈옥수수〉 본문 중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쌀밥은 평지 주민이 상식으로 할 것이지 조선과 같이 산악이 많은 곳엔 밭이나 산에서 되는 것으로 상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지의 면적은 늘지 않는데 인구는 점점 늡니다. 그런데도 하루 세끼 흰 쌀밥만 먹으려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찌하여서든지 산에서 만드는 식량과 그것을 맛있게 해 먹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자신 가정에서 실행하고자 생각한 바이예요.” ─ 〈옥수수〉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이광수(李光洙, 1892~1950)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이다.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안원대군의 후손인 이종원(李鍾元)과 어머니 충주 김씨(忠州金氏)의 4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1살 때 전염병으로 부모님과 가족들을 잃고 천도교에 입교, 1905년 일진회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유학갔다.
1908년 홍명희·문일평·안재홍 등과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해 《소년》을 발행, 이듬해 소설 〈노예〉, 〈사랑인가〉, 〈호(虎)〉를 발표했다.
1910년 《대한흥학보》에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고 계몽단체 광문회(光文會)의 일원이 되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독립신문》과 《신한청년》 주필로 활동했다.
1922년 5월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도덕적 타락’이 한민족의 쇠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동하면서 〈재생(再生)〉, 〈마의태자(麻衣太子)〉, 〈단종애사(端宗哀史)〉, 〈흙〉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로 전향, 1939년 친일단체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전선병사 위문대·위문문 보내기를 주도했다.
1940년부터 해방 전까지 《매일신보》에 황민화운동, 창씨개명 정책,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징병제 실시 등을 지지하는 글을 게재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기소됐으나 석방되고, 1950년 6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 만포에서 병사했다.
대표작으로 소설 〈무정〉, 〈사랑인가〉, 〈소년의 비애〉, 〈무명〉, 〈마의태자〉, 〈흙〉, 〈원효대사〉, 〈유정〉, 〈애욕의 피안〉, 〈할멈〉, 〈가실(嘉實)〉 등이 있으며, 전기 〈이순신〉, 〈안창호〉와 자서전 〈나의 고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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