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토불이 우리문학 144 】
유방천추(遺芳千秋)
차상찬
책소개
〈유방천추(遺芳千秋)〉는 《한국야담사화전집》 차상찬 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청주는 대병을 친히 거느리고 모든 장사들을 독촉하여 불과 열흘 만에 샛길로 한성을 향하여 올라오니 불의에 큰 변을 당한 만조 상하는 크게 놀래어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일이 몹시 다급하므로 어쩔 수 없이 모모 대신 등으로 왕자와 빈궁과 나라 사당을 모시고 강화도로 보내고 인조께서는 적군의 선봉을 피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가셨다. ─ 〈유방천추〉 본문 중에서
죽을지 살지 앞일을 예측 못하는 심씨는 어머니와 형에게 어린 아들을 딸리어 보내고 텅 비인 집안에 혼자서 남편 오기를 기다리며 일행이 무사하기를 주야로 물을 떠다 놓고 북두칠성께 축원하고 있었다.
동지섣달 설한풍이라야 송백의 절개가 놓은 줄을 알고, 위급하고 험난한 죽을 고비에서 만인정의 지극한 것을 아는 것이다. ─ 〈유방천추〉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차상찬(車相瓚, 1887~1946)
본관은 연안, 호는 청오(靑吾), 도호는 노암(蘆菴)이다.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가, 수필가, 언론인이다.
1887년 2월 12일 강원도 춘천에서 5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1906년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8년 학생들을 모아 관동학회를 조직하였다.
1910년 3월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회에 참여하여 개벽사를 창립하는데 앞장섰다.
1920년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야회 이돈화 등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1921년 5월 1일 이돈화, 박달성과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창립, 그 1주기가 되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선포했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이후에도 별건곤, 신여성, 농민, 학생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1938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희빈》을 연재하는 중에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46년 3월 24일 사망하여, 춘천시 송암동에 안장되었다.
2010년 11월 1일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해동염사(海東艶史)》,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등이 있으며 주로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